수저세트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가 실패가 두려워 멈춰 선 사람들을 위해 게으름에 대한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왜 우리는 완벽한 결과물을 꿈꾸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항상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걸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게으른 것 혹은 의지력 부족이라고 쉽게 규정해 버린 '나태함'에는 보다 복잡한 심리의 층위가 숨어 있다. 저자는 반복되는 게으름의 굴레로 불편을 겪었을 많은 사람에게 더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출발선을 제안한다.

대학 동기 결혼식에 갔을 때 일이다. 누군가 뷔페 식당에서 서윤후 시인(35)의 등을 탁 쳤다. 졸업하고 처음 보는 동창이었다. 안부도 없이 “야, 너 아직도 시 쓴다며?”라고 대뜸 물었다. ‘아직도?’ 맘에 걸렸지만 웃으며 답을 했다.

“응, 나 ‘여전히’ 시 쓰고 있지.”

서 시인은 만 19세에 등단해 17년째 쉬지 않고 시를 쓰고 있다. 출판사 편집자를 병행하면서 지금까지 시집 5권과 산문집 4권을 펴냈다. ‘여전히’ 쓰는 정도가 아니라 지독하게 성실히 써 왔다. 최근 다섯 번째 시집 ‘나쁘게 눈부시기’(문학과지성사)를 펴낸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문지 사옥에서 만났다.

‘나쁘게 눈부시기’는 대체 어떻게 눈부신 걸까. 서 시인은 “전조등이 갑자기 환하게 비출 때, 저 사람은 밝게 나아가고 싶어서 켠 불이지만 누군가는 갑자기 사방이 안 보여 찡그리게 된다”며 “빛을 통해 볼 수 있는 어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엮었다”고 했다.

“그동안 ‘나쁘다’는 제 수첩엔 없는 단어였어요.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때부터 줄곧 자기 질서를 지켜온 표본적인 사람처럼 시를 써왔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작가가 ‘윤후 시인이 나쁘게 쓰는 글을 보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나에게 없던, 혹은 내가 숨겨 왔던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말로 들렸어요.”

‘나쁘게’ 변신을 예고한 대로 이번 시집에는 유독 날카로운 조각의 이미지가 많다. 수록 시 ‘유리가미’에서 시적 화자는 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연줄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매단다.

‘사람들을 뒤뜰에 남겨두려고/깨진 것 중 가장 날카로운 유리가미를 고른다/끊어진 연을 주우러 또 올 수 있게’(시 ‘유리가미’에서)

하지만 이런 조각이 남을 상하게 하는 무기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시인은 깨진 조각을 이어 붙여 새 생명을 불어넣는 ‘킨츠기(金継ぎ·일본의 도자기 수리 기법)’를 들여다본다. 금가루로 틈을 메워 수선된 도자기는 깨졌던 부분이 아름다운 금색 선으로 빛난다. 상처를 숨기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떻게 상처를 극복했는지 남겨 놓는 셈이다.

‘접시를 깨뜨렸던 실수는 흉터의 좋은 재료가 된다…깨진 것을 이어 붙이며 무늬를 새겨 넣은 저 접시를 시작하는 접시라고 불러야 할까?’(시 ‘킨츠기 교실’에서)

날카로운 조각을 무기로 쓰던 시적 화자는 상처를 매만질 줄 아는 이로 성장한다. 이번 시집을 통해 시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서 시인은 “그동안은 붙잡고 끌어안고 싶은 마음에 집착하듯 기록한 것 같다. 헤어진 사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시에 많았다”며 “이제 지나칠 것은 지나치게 두고 남길 것은 남기면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최근 매일 아침 쓰던 일기를 2주째 멈췄다. 기록매체를 내려놓고 맨몸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법은 오히려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그 시간에 투신하는 것”이라는 게 요즘 서 시인의 생각이다.

“기록을 못 하니까 더 절실하게 보고 절실하게 들어요. 이런 방식으로 감각하는 게 좋습니다.”

이 책은 일반적인 read more 자기계발 서적처럼 독자에게 억지스러운 동기를 부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 전환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게으름의 본질을 파헤침과 동시에 자책감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돕는다. 또한 자신을 망가뜨리는 고질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레인(RAIN: Recognize(인식하다), Allow(허용하다), Investigate(조사하다), Nurture(양육하다)) 기법, 액트(ACT, 수용-행동 치료) 등의 심리학 도구를 통해 내면의 나태함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은 미루고 지체하는 습관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꿔나가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더 이상 나태한 자신과 싸우지 않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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